시모음

슬픈날의 편지

dpfah 2019. 6. 23. 02:35





슬픈날의 편지


                  이해인


모랫벌에 박혀 있는

하얀 조가비처럼

내 마음 속에 박혀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슬픔 하나

하도 오래되어 정든 슬픔 하나는

눈물로도 달랠 길 없고

그대의 따뜻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이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듯이

그들도 나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올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 들이며

즈금은 그저

혼자만의 슬픔 속에 머무는 것이

참된 위로이며 기도입니다


슬픔은 오직

슬픔을 통해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

언제부터 지니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항상 답답하시겠지만

오늘도 멀찍이서 지켜보며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이유없이 거리를 두고

그대를 비켜가는 듯한 나를

끝까지 용서해 달라는

이 터무니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 한잔이 생각나는 아침  (0) 2019.07.21
행복한 결핍  (0) 2019.07.09
6월의 시  (0) 2019.06.09
오 월  (0) 2019.05.25
새싹의 계시  (0) 2019.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