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2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dpfah 2018. 5. 25. 12:16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바쁘다 정말 되게 바쁘게 산다 웬일인지 나이 들면서는 일 욕심이 더 많아졌다

자진해서 오버타임까지 찾아내는 나를 향해 미국인 직장동료들은

한국사람은 부지런하다 못해 강한 민족이라는 말을 한다

질투인지 아님 부로움인지 잘 모르겠지만 툭하면 결근하는 그들과는 달리

어쩌다가 몸이 아프더라도 끝내 주어진 책임을 완수 하려는 나의 근면함에

회사측은 열렬한 박수를 보내준다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소 띠도 아닌데 왜 그토록 일에만 몰두하며 사느냐'고

나는 지체없이 대답한다 '그저 일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요' 라고

아니 솔직히 재미를 넘어서서 일할 수 있는 내가 나 자신한테 참으로 고맙다

나 스스로 기특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낯 설은 이민의 땅에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매끄럽지도 못한 영어 실력으로 달러를 벌어 잘 사는 것이 대견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예쁘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회사를 땡땡이 쳤다 이유는 단지 비가 와서다

이런 날엔 나는 꼭 그 찻집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창문 넓은 찻집에

앉아 유리창에 뿌려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것은 여간 한 행복이 아니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작은 물방울들이 또르르 풀잎의 알집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도 마냥 신기하고 굵은 비와 가는 비의 강약의 조화로움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그리고 마침내 투명한 유리 안으로초대된 빗방울과

커피향의 하모니는 절정에 다달음을 느낀다


와 우! 바로 이 맛이다 이런 매력과 마력에 빠져 나는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무한한 행복에 젓는다 애타게 기다릴 님과 임이 없어서 좋고

온종일 카페인만 마셔도 속이 쓰리지 않아서 즐겁다 오늘까지 원고 마감이라는

월간지측의 독촉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마음 편함이; 다행이고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진 것까지 안심이다


무늗ㄱ 어느 책에서 읽었던 인디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가끔씩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나의 영혼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뒤를 지켜보는것 이라고 한다

우리도 인디언처럼 내 안에 있는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또 내가 달리는

속도는 적절한 것인지 한번쯤 뒤돌아보면 좋겠다는 메시지였다


내 안에 내가 충분히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한 오늘 나는 아주 잘 놀았다고

자신을 위로한다 그러나 남음 숙제 하나는 오늘 밤 안으로 약속한 원고를

제출하는 일이다 부담이 되지만 돈도 안되는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내 안에 있는 다른 나와 공감하고 싶어서다 공감한 그 소통으로 많은 사람을 얻어

친하게 잘 지냈으면 싶기에 늦은 시간 나는 컴퓨터를 연다 그리고 오늘의

일기노트에는 '커피랑 완전 행복했음' 이라고 적는다 - 에스더최의 행복한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