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2

당신을 버릴 때

dpfah 2020. 2. 7. 08:43






당신을 버릴 때



      박노해



첫 사랑의 소박한 그녀를

내가 겉멋 들어 버렸을 때

희 쁘연 가로등 아래서 그녀는

잡지도 않고 말 한마디 없이

굵은 눈물 흘리며

기숙사로 돌아 갔다


내가 세상을 알았을 때

소박하고 진실한 그녀는

저만큼 앞서 해고자가 되어

또 다시 어느 현장에 몸을 담고

어리석은 나를 조용히 미소 지으며

손짓 하고 있었다


2년을 바둥쳐 봐도 얼어붙은

이 침묵 잠들은 동료들을

병신이라 원망 하고

자포자기한 동료들을 흔들어 봐도

움직이지 않는 죽음의 바다

앞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 버렸다


십년을 노력 해도 가망 없다고

차라리 다른 곳에 씨를 뿌리자고

사직서를 품에 넣고 출근한 아침

웅성웅성 동료들은 일손을 놓고


눈과 눈이 마주쳐 불꽃이 일고 말고

가슴이 합쳐져 함성으로

처얼썩 출렁 파도 쳐

천이백 근육들의 출렁임으로

거대한 해일처럼 휩쓸며

일어 서던 날


내가 눈이 어두워 그녀를 버린 것 처럼

나는 형제를 믿지 못 하였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닌 인간임을

억눌리고 빼앗기는 농동자임을

견디다 못해 일어서면

해일이 되는 무겁고 깊은 바다임을

나는 매몰 속에서

섣부른 머리와 조급함으로

지루함을 이기지 못 하고

형제를 버리려 했었다


숨 죽인 바다는

마침내 해일이 되는 것을

굳센 믿음으로 옳은 실천으로

끈질긴 집념으로

서둘지 말자

그러나 쉬지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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