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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옆집 청년

dpfah 2018. 7. 9. 14:33




친절한 옆집청년


자정이 다 되어간다 가족들은 일찌감치 잠이 들었고

나는 전기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는 중이다 우리 동네는

주택만 있기 때문에 이 시간이면 쥐 죽은듯 교요하다

나는 13층짜리 아파트가 30채나 들어서 있는 빡빡한 서울 한복판의

아파트촌에서 자랐다 집 앞에는 슬리퍼를 끌고 나가 두부 한 모를

냉큼 사올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가게가 있었고 사람들의왕래도

밤늦도록 잦은 곳이었다 그러니 저녁 시간만 지나면 시작되는

고요함은 내게 작정을 하고 적응을 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고요함도 오늘처럼 느닷없이 깨지는 때가 가끔있다

그건 주로 굉음을 내는 엔진 소리가 들릴때이다

옆집 청년이 귀가했나보다 그는 스무살 남짓 된 앳된 청년인데

자동차조립과 단장에 무척이나 열심이다 주말이면 그는 자동차 밑에서

무언가 뚝딱거리고 있는 것을 종종 볼 수있다

개조인지 조립인지 분명치 않은 그의 차는 늘 유별나다


처음차는 조수석만 까만 흰색 자동차였는데 출발할 때마다 엄청난 매연을 뿜어댔다

최근엔 파란색 스포츠카로 바꾸었다 말이 스포츠카이지

모델명도 제조사도 알 수없는 아주 낡은 차이다

디즈니 만화영화에 나오는 맥퀸처럼 차 뒤에 커다란 스포일러를 달고

굉장한 엔진소리를 낸다 남의 차가 무엇이든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매연에 이어 굉음이라니 정말 탐탁치 않았다


그런데 이 엔진 소리가 더 이상 힘들게 들리지 않게 되는 일이 있었다

어느날 아들과 뒷마당에서 비행기 날리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담장을 넘어갔다 옆집 대문을 두드렸더니 그 청년이 나왔다

외출을 하려던 참이었던 것 같은데 비행기를 찾아 주러 선뜻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찾은 것을 아이에게 건네며 "너 비행기 정말 쿨하다! "웃어보인다


나는 그의 친절에 내심 놀랐다 그리고 깔끔한 옷차림에 얌전한

자동차를 몰아야 친절하고 바른 사람일 것이라고 여겼던 나의 편견에는 더 놀랐다

어쩌면 내가 언짢았던 것은 시끄러운 엔진소리 때문이 아니라

모범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의 취향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친절을 마주하자 일방적인 오해가 미안해졌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는 밤늦게 들리는 엔진 소리도 괜찮다

잠깐인걸 하고 아량을 베푼다 그리고 나도 다음에 만나면

" 너 차 정말 쿨하다 "고 친절한 말 한마디 건네고 싶다

- 여성의창/한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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