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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라면

dpfah 2019. 11. 7. 04:25






오랜만에 만난 라면


점심시간이 되었다

배에서 소리도 나고 허기도 왔다

TV 소리가 들렸는데 언제부터인지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부엌 옆 방으로 갔다

점심 안 먹느냐고 말하러 갔는데 보니 집사람이

카우치에 누어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


아침 6시에 새벽예배를 다니니 졸리기도 할 것같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약간 주저 했는데

집에서 기르는 개도 물이 없다고 야단이다

물그릇을 입으로 밀고 다니면서 깡통소리를 낸다


영리한 개는 언제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표현한다

올해 나이가 13살이니 인간의 나이로치면 81세가 넘은 것이다

개도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개에게 물을 주고 나도 해결을 해야 겠는데


식자료를 놓아두는 곳으로 가서 두리번 했다

라면을 찾는데 보이질 않는다 원래 라면은 거의

먹지 않다 보니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한참동안 뒤지다 보니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어 보니

신라면 아니겠나 언제 사 왔는지 알 수없지만원군을 만난기분이다

부엌에 가서 물을 붓고 기다리니 라면을 넣을 때가 되었다


마침 아이가 집에 오겠다는 카톡이 왔다

한달에 두 번 와서 하루를 지낸다

다음날 아침이면 부리나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간다

바트 기차역까지 데려다 주어야 출근할 수 있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시끄러운 야단이었는데 이제는

모두 떠나고 노부부만 남았다 이런 집이 이젠 꽤 많이 된다

바람에 날리고 구름에 흘러간 세월이 그만큼 많다는 것 아니겠나


라면을 그릇에 담으려고 조용히 가는 동안  집사람이 뒤척거렸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고양이 걸음으로 겨우 라면을 담아 나왔다

카우치에게 누워서 고단한 잠을 자는데 여간 안쓰럽지 않았다

그녀의 고단한 순간을 누가 알겠나


라면 몇 가닥을 먹는데 무슨 냄새냐는 소리가 들렸다

라면을 끓였다고 하니 벌떡 일어 났다

라면 싫어 하는데 왜 먹으려고 하느냐고 묻는다

오랜만이라 괜찮은 것 같다고 했다 원래 좋아하진 않지만

스스로 할 수있는 요리가 겨우 라면 끓이는 것이니 어찌 하겠나


그래도 요기를 때우는데 이보다 간편하고 좋은 것이 또 어디 있겠나


오늘은 라면이 먹고 싶었다 간단한 일상이지만

노부부의 삶은 이렇게 해와 달이 바뀌면서 저물어 간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고기를 먹을 것 같다

아이가 워나기 고기를 좋아해서 올 때마다 고기와 김치찌개를 준비한다

많은 것을 준비하기 힘든 나이지만 아들이라는 매직이 기운을 나게 한다

오랜만에 오는 아들은 항상 부모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생각하는 것 같다

부모에게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는 것 같다


고마운 일이지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젊은 이들이 얼마나 바쁘고 일이 많은가 우리 세대가 이미 경험했던 일 아닌가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남편이 부인 생일에 좋아하는 사과를

깍아 주고 싶었는데 손에 힘이 없어서 간호사에게 어렵게 부탁했는데

예쁘게 깍지 않아 마음이 상했지만부인에게 주고 그 다음날

작고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간호사가 몹시 울었다는 내용이 많은 감명을 주었다

우리는 남의 집 사정을 잘 모르고 산다

그래도 항상 남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과 배려의 마음을 갖고

산다면 기분 좋은 하루하루가 될 것이다


라면 타령을 했지만 우선 아들이 온다니 기분이 좋다

스포츠 상식이 많은 아들이니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기대가된다

(김동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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