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음 75

스며드는 것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 할 수 없어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끄고 잘 시간이야

시모음 2023.06.10

방문객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도 어마어마 한데,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의 삶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 펼쳐집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는 신비를 통해 그분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분이 이루신 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

시모음 2022.04.03

만나서 편한 사람

만나서 편한 사람 용혜원 그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대를 만나 얼굴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대는 내 삶에 잔잔히 사랑이 흐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대를 기다리고만 있어도 좋고 만나면 오랫동안 같이 속삭이고만 싶습니다 마주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고 영화를 보아도 좋고 한 잔의 커피에도 행복해지고 거리를 같이 걸어도 편한 사람입니다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는 듯 느껴지고 가까이 있어도 부담을 주지 않고 언제나 힘이 되어주고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잔잔한 웃음을 짓게 하고 만나면 편안한 마음에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를 잊도록 즐겁게 만들어 줍니다 그대는 순하고 착해 내 남은 사랑을 다 쏟아 사랑하고픈 사람 나의 소중한 것을 이루게 해주기에 ..

시모음 2022.03.27

12월의 시

12월의 시 최홍윤 바람이 부네 살아 있음이 고맙고 더 오래 살아야겠네 나이가 들어 할 일은 많은데 짧은 해로 초조해지다 긴긴밤에 회안이 깊네 나목도 다 버리며 겨울의 하얀 눈을 기다리고 푸른 솔은 계절을 잊고 한결같이 바람을 맞는데 살아 움직이는 것만 숨죽이며 종종걸음치네 세월 비집고 바람에 타다 버릴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데 시간은 언제나 내 마음의 여울목 세월이여 이제 한결같은 삶이게 하소서 "김종환 - 사랑을 위하여"

시모음 2021.12.03

8월에게

8월에게 윤보영 ​ 반갑다, 8월! 참 많이 기다렸지? ​ 기다린 만큼 더 짙은 시간으로 채워 떠날 때는 아쉬움이 없도록 하자 ​ ​너로 인해 들판의 곡식은 단단하게 여물 것이고 사람들 이마에 흐른 땀도 더 보람 있어지겠지 ​ 가까이 다가 왔던 하늘은 높아지기 시작할테고 높아진 만큼 물은 더 멀리 흘러가겠지 ​ 그 빈자리를 우리 보람있는 시간으로 채우자 ​ 8월 너랑 나랑 힘을 합치며 안 되는게 무엇이며 못 이룰게 뭐가 있겠니 ​ ​12월이 되어 한해라는 이름으로 올해를 지울때 내 너를 힘 주어 기억하겠다 ​ ​애인처럼 내 멋진 8월! ​ 반갑다 무리없이 와 주어 고맙다

시모음 2021.08.01

커피 같은 당신

커피 같은 당신 풀잎/유필이 질리지 않는 커피향 처럼 당신의 향기도 그렇습니다 매일 마셔도 싫증 나지 않는 것처럼 당신의 사랑도 커피 맛과 같습니다 진한 사랑의 빛깔로 은은한 향기를 품고 하얀 그리움을 솔솔 피워 올리며 따사로운 가슴으로 겨울 길목에 서 있는 헐벗은 나목 처럼 꽁꽁 얼어 있는 내 마음을 봄눈 녹이듯 사르르 녹여주는 당신은 커피 같은 사람입니다

시모음 2021.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