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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문화란

dpfah 2020. 11. 18. 03:52

[스크랩] 대한민국은 지금 `욜로` 바람이 불고있다!

 

욜로문화란

2017. 8. 15.

 

글 편집 묵은지

 

 

                                                                     --- 글,편집: 묵은지 ---

요즘 방송의 시사(時事)프로나 광고, 인터넷, 기타 커뮤니티 상에서 유독 자주 눈에 띄거나 사용되는 용어(用語)가 있어 묵은지가 촉(觸)을 쫑긋하게 세웠습니다. 다름아닌 '욜로(YOLO)'라는 말인데 알고보니 이것은 알파벳 각각의 첫글자를 따온 것으로 굳이 낱말로 풀어보니 'You Only Live Once'로 '당신의 인생은 오직 한 번 뿐이다'라는 뜻으로 해석(解釋)되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이 말은 몇 해전인 2011년 미국의 유명 래퍼인 '드레이크'가 부른 노래 'The Motto'의 가사 일부분이었습니다. 이 곡(曲)이 빌보드 상위차트에 오르면서 대중적(大衆的)인 관심(關心)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때마침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가 국민들에게 자신의 '건강개혁보험안'을 홍보(弘報)하면서 "욜로 맨!(YOLO, Man!)"이라고 외쳐 미국민들에게 강한 인상(印象)을 주었습니다. 이 말은 순식간에 세계도처의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며 퍼져나가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2016년 '옥스포드' 사전(事典)에 신조어(新造語)로 등재(登載)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말의 발생지(發生地)인 미국에서는 이미 미국인들의 정서상(情緖上)에 그 의미(意味)나 실천력(實踐力)이 떨어져 말뜻의 본질(本質)에 타당성(妥當性)이 별로없고 현실적(現實的)으로 거리감이 있다하여 시들해지고 있는데 반해 어찌된 일인지 2017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 서서히 심상치 않은 바람이 일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굳이 원인을 따져보니 원래의 의미보다는 고급진 뜻으로 변질(變質)시켜 뭔가 있어보이는 듯한 암시(暗示)를 내풍기며 젊은이들을 꼬드기고 있는 각 기업(企業)의 상술의 결과로 보이는듯 합니다. 이 말이 지닌 본래의 의미를 한층 고차원화(高次元化)하여 격(格)이 높은 뜻으로 재해석(再解釋)해서 각종 광고(廣告)로 마케팅, 미디어 등에서 발빠르게 활용(活用)하고 있는 기업들의 장삿속은 때마침 젊은이들이 겪고있는 삶의 스트레스와 상실감(喪失感)속을 파고드는데 적절한 전략이 되었습니다. 애초에 미국에서는 욜로가 그야말로 걱정이고뭐고 나 하고싶은대로 현실에 맞춰 살겠다는 철딱서니없는 '똥배짱'의 넋두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들이 소비의 촉진(促進)으로 불황(不況)을 벗어나려는 기발(奇拔)한 심리적(心理的) 상술(商術)에 젊은 사람들이 망설임없이 카드를 긁어대도록 소비풍조(消費風潮)를 조장(助長), 변형(變形)된 또다른 형태(形態)의 한국식 욜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들은 이전에도 '신세대'니 'X세대', 2000년대 들어서는 '밀레니엄 세대' 등으로 그때그때 시기(時期)에 젊은 세대들에게 맞는 용어를 만들어 광고에 열을 올렸는데 요즘 역시 대개의 기업들은 또다시 새롭게 만들어낸 '욜로족', 혹은 '욜로세대'라는 용어를 뻔질나게 자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용어를 젊은이들을 향한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삼은 것 같습니다. 이와 유사한 말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뜻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다름아닌 지난 1990년에 우리나라에서도 개봉(開封)되어 큰 흥행을 이루었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映畵)에서 나온 말입니다. 지난 2014년, 안타깝게도 지병(持病)을 비관(悲觀)하여 자살(自殺)한 남자 주연배우(主演俳優)인 '로빈 윌리엄스'의 열연(熱演)으로 많은 관객(觀客)들에게 감동(感動)을 준 영화인데 이 영화의 내용 중에 나오는 명대사(名臺詞) 가운데 욜로의 의미와 아주 흡사한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로마의 시인(詩人)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나온 '카르페 디엠'의 구절이 인용(引用)되어 나옵니다.

이 말은 비록 영화 속에서의 내용이지만 그 당시 고지식한 미국의 명문학교 교육에 갇혀있던 학생들에게 해방감(解放感)을 안겨준 속 시원한 말이었으며 입시위주(入試爲主)의 교육에 갇혀있던 우리나라의 대다수 학생층에서도 마음의 위안(慰安)을 안겨주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이전보다 더 심한 정신적인 압박감(壓迫感)과 불안감(不安感), 박탈감(剝奪感) 등이 겹쳐 내적(內的) 갈등(葛藤) 더욱 심화(深化)되어있어 비록 비슷한 같은 뜻의 말이지만 욜로라는 말에서의 느낌은 카르페 디엠에서보다 그 의미를 쫒으려는 의지가 훨씬 더 강한 충동(衝動)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욜로는 이렇게 막연한 미래를 의미없다 여기고 현실(現實)에서 지닌 자신의 지적(知的), 경제적 등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누리려는 사람들의 실천적(實踐的)인 몸부림으로 의미는 비슷하나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는 카르페 디엠에서보다 구체적(具體的)으로 노골화(露骨化)하여 자신을 위한 것처럼 생각하게끔 만들어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심각한 취업난(就業難)과 치솟는 부동산(不動産) 가격에 점점 어려워진 내집 마련의 꿈, 많은 비용(費用)이 따르는 결혼(結婚)과 출산(出産), 그리고 과다(過多)한 교육비(敎育費)의 지출(支出) 등은 아무리 아등바등하며 산다고 해도 결코 쉽지않게 보이는 젊은 세대들로 비쳐보았을때 욜로의 바람은 결코 우연한 것은 아니라는게 묵은지의 생각입니다. 도리어 이러한 젊은 세대들의 욜로의 주장(主張)과 실천은 불투명(不透明)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좌절(挫折)을 덮고 그 굴레에서 탈피(脫皮)해 보려는 지극히 현실적인 몸부림일 수도 있습니다.

 

무기력(無氣力)하고 무료(無聊)한 일상을 단숨에 날려버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마인드 전환(轉換)과 자신의 또다른 내면(內面)의 잠재(潛在)를 발견(發見)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묵은지가 너무 그들을 긍정적으로만 이해(理解)하려는 편협(偏狹)되고 단순한 생각일까요? 욜로라는 용어의 출신성분(出身成分) 자체가 '슬랭(Slang:속어)'에 가까운 말이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 20~30세대의 현실에 딱 꿰어맞춘 용어로 안착(安着)된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어렵고 힘든 불투명한 미래를 위한 노력보다는 현재의 나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다는 의미로 이러한 젊은 세대들의 성향(性向)을 잘 간파(看破)한 기업들의 전략(戰略)이 함께 잘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모(某) T.V방송의 대담(對談)프로에서 지적(指摘)한 우리의 '레저문화'에 대한 얘기는 욜로를 어떤 방향으로 운용(運用)을 하고 자신 스스로가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그 가치도 상당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을 일례(一例)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캠핑을 가더라도 캠핑장을 벗어나지 않고 그 캠핑장에서도 텐트를 떠나지 않고 텐트에서도 버너나 화롯가에서 음식을 하거나 먹는일에만 치중(置重)하다 온다"는 이야기로 하루를 즐긴다는 것이 온통 음식과 씨름하고 먹고 마시다 진정한 캠핑의 의미도 모른채 오는 일이 다반사(茶飯事)라는 이야깁니다.

 

그러한 레저문화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들인지... 또한 잦은 회식(會食)과 허례의식(虛禮儀式)을 통해 어떻게든지 더 먹을수 없을 만큼 먹고 더 마실수 없을 만큼 마시려는 우리의 잘못된 음식문화의 풍조(風潮)에서도 진정한 그 음식의 본연(本然)의 맛과 분위기를 나누고 즐기며 건강을 도모(圖謀)하는 건전한 의식(意識)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은 묵은지도 귀담아 들으며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욜로의 정신에서 가장 핵심(核心)인 주인공은 바로 '나'로서 자신의 삶을 보다 가치(價値)있게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 가치를 어떻게 높이느냐는 많은 노력과 함께 지혜로움이 필요로합니다. 대개의 잘못된 나쁜 결과와 함께 실패한 욜로는 그 과정을 왜곡(歪曲)하였거나 소홀히 하는데서 비롯된다고 보는데 이런 여러가지 이유를 보더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알차게 즐긴다는 것이 생각보다 결코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의 삶을 위한다는 것은 무료(無聊)한 자신의 일상을 단숨에 던져 버리고 자신을 발견한다며 베낭 하나 달랑 둘러메고 훌쩍 떠나버리는 그것이 다가 아니라 그러한 일탈(逸脫)에서도 무언가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것을 찾는 수준높은 진정한 욜로정신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러한 사회의 욜로 분위기 속에 나홀로 삶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또다른 고민거리로 비쳐지기도 하는데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의 사회적 기능으로 볼 때 어떤 면에서는 매우 타당성(妥當性)이 있다는 낙관론(樂觀論)도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에서는 일부 사람들에게 일상(日常)이 되어버린 '혼술', '혼밥' 등의 문화가 우리 주변에서도 이젠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도 어느정도 이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으로 이 또한 욜로의 사회적 현상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많은 것을 아우르기가 벅차고 격식(格式)을 챙기기 귀찮아 불필요함을 최소한으로 줄여 간소하게 나를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려는 대개의 나홀로 문화는 젊은 세대들이 만든 새로운 문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나홀로의 양면성(兩面性)은 또다른 모습을 보일수 있는데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감(責任感)을 포기한채 팀웍을 이루지 못하고 협동(協同)과 어울림을 멀리하여 사회성을 잃어 단절(斷絶)돼 버린 자신의 무개념(無槪念)과 무기력(無氣力)함 속에 사회적 병리(病理) 현상을 만들기도하여 실제로 우울증(憂鬱症)이나 조울증(躁鬱症)과 같은 무서운 정신병이 우려(憂慮)되기도 합니다.

후회없는 인생을 즐기려는 욜로 정신은 적용(適用)하는 방법에 따라 자칫 무분별(無分別)하게 인생을 소비(消費)하는 그냥 의미없는 '한탕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욜로의 등장은 과거 고도(高度) 성장기(成長期)에 오로지 투자(投資)로 치닫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불황을 동반(同伴)한 '저성장(低成長)', '저금리(低金利)' 시대로 피할 수 없는 현상이기에 차라리 합리적(合理的)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여 자신을 더욱 가치있고 소중히 만드는 삶을 가꾸는데 제도적인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주위에 연연(戀戀)하지 않고 나를 위해 후회없이 즐기며 살겠다는 것을 보다 구체화하여 생산적으로 건전(健全)하게 실천(實踐)해 간다면 현재지향적(現在志向的)이며 감각지향적(感覺志向的)인 성공한 욜로식 삶이 펼쳐질 것으로 믿습니다. 세상일이 그렇듯이 좋은 것도 오래가면 신선(新鮮)함을 잃고 진부(陳腐)해 지면서 찌들은 오염(汚染)으로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되듯이 욜로도 어느 땐가는 그 수명(壽命)이 다할 것이지만 현재의 욜로는 엄연하게 존재(存在)하고있고 아직 확실한 자기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욜로가 미래를 포기하는 그야말로 '핑계'거리에 불과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트렌드에 맞춘 자기 성찰(省察)의 가치를 높이는 삶의 지표(指標)가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욜로는 미래에 대한 기대(期待)를 접어버린 절망(絶望)의 외침인 동시에 지금 현재의 나를 사랑하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실은 희망(希望)의 바램이기도 합니다. 무작정 가진 돈 몇 푼을 챙겨 배낭여행을 떠나는 사람, 월급을 탈탈 털어 기어코 값비싼 명품을 사는 사람, 자신의 취미생활(趣味生活)을 이유로 연애나 결혼도 멀리하고 오로지 자신의 시간에 투자하는 사람 등은 욜로가 낳은 낯익은 현상들입니다. 미래를 염두(念頭)에 두지않고 현재에 만족(滿足)하려는 욜로가 젊은 세대들 사이에 불고있는 바람이라면 단순히 하나의 현상으로 바라보기에는 그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는 지적도 적지않습니다. 미래의 주역(主役)이 바로 지금의 젊은 세대들인데 이 젊은이들이 미래를 포기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미래를 내다보기가 어려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분명 욜로는 일시적(一時的)으로 부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긴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개인이나 국가가 발빠르게 적절한 판단(判斷)과 조치(措置)로 대응(對應)해 가야하며 이에 따른 부작용도 최소화(最小化)하려는 노력은 물론, 새로운 트렌드를 이용한 사회적 연구(硏究)와 정책(政策)은 개인과 국가의 발전도 함께 도모(圖謀)할 수가 있을 것으로 묵은지는 확신(確信)합니다.

 

오래 전에 스크랩 해다 놓은 건데 읽어 보면

시대의 변화를 왜 우리는 분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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